오늘은 성령의 충만함과 교통함, 성령의 음성·주관·인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세주 되신 주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주를 영접한 영혼들의 마음에 임하시어 변화되도록 깨우쳐 주시고 세상을 승리하도록 인도하시며 아름다운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 돕는 영으로서 역사하시는 방법 중에는 말씀의 제목과 같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이 있으며 지난 시간에는 먼저 성령의 충만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1. 성령의 충만함
성령의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진리를 통해 영의 공간을 느끼게 해 주시는 것이며 그러니 육이 전혀 없고, 죄가 전혀 없으며 평안과 기쁨과 감사만 있는 영의 공간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힘들고 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들도 할 수 있고, 밉던 사람도, 이해되지 않던 사람도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죄악도 깨우쳐지며 천국 소망이 더해지므로 신앙생활이 쉬워지지요.
이때 마음에 있는 비진리가 순간에 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활동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이기에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면 마음의 비진리가 다시 드러납니다. 또한 마음의 비진리가 있는 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쉽게 잃고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기 위해 힘써야 하지요.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려면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행하고 싫어하시는 것은 차단하고 행치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도를 쉬고, 세상 것을 취하며, 짜증하고 다투는 등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성령의 충만함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으며 찬양하고 선을 행하면 내 안에 성령께서 활발히 역사해 주십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려면 쉬지 않고 기도하되 부르짖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십니다. 이런 은혜를 체험하고도 세상을 짝하고 죄악 가운데 살아서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상 깨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법 중에는 불로서 임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더 쉽게 성령의 불을 받아 질병, 균도 태워지고 죄성들도 태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면 기도의 응답도 더 앞당길 수 있으며, 믿음도 더 빠르게 성장 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성령의 충만함 입기를 더 사모하여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의 교통함
아담이 에덴에 있었을 때는 생령으로서 비진리가 없고 진리로만 충만했기에 하나님과 늘 교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열린 영의 공간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영의 지식을 가르침 받을 수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교통함을 이룬다”는 것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령의 교통함도 각 사람이 진리의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정도가 다릅니다. 훌륭한 수학 박사님이라 해도 초등학생에게는 그에 맞는 수준만큼 밖에는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외국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이지요. 선생님이 유창하게 외국어로 말할 수 있어도 학생이 알아듣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만 외국어로 얘기하는 것이고, 알아들은 만큼만 대답할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만 가르쳐 주시며, 순종할 수 있는 만큼만 들려주십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셔도 알아듣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이상은 들려주실 수 없지요.
3.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성령의 음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릴까요?
내주하신 성령께서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거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주는 것을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달라면 주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는 자가 큰 자다” 등의 말씀이 떠오르거나 설교로 들었던 말씀이 떠올려지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에는 성령께서 여러분이 행할 바와 말할 바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6절에 보면, 시므온은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했고, 사도행전 8장 29절에는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했지요. 성령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려지는 방식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내주하신 성령께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도해야겠다’, ‘금식해야겠다’, ‘누구를 구제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거나,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 ‘이것이 더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되겠다’ 하는 등의 마음이 들게 해 주시지요. 사도행전 16장 6절에 사도 바울의 경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했는데, 바로 성령의 주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의 음성으로 들은 것이나, 주관 받은 것을 순종해 나갈 때 그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꼭 응답받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어서 ‘작정해서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아! 성령의 주관이구나!’ 하고 순종하여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해 나갑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작정 기한이 다 차가는 데도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잘 양식된 사람은 어떤 성령의 음성이 들려올까요? 다니엘이 큰 응답을 받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첫날 응답을 주셨지만, 응답을 가지고 오는 천사가 악한 영과 싸우느라 21일째야 비로소 응답이 왔던 내용이 떠오르게 됩니다.
또한 누가복음 18장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들이 떠오를 수도 있지요. 이 밖에도 10년, 20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변함없이 믿었기에 결국은 축복의 응답을 받았던 아브라함의 신앙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며 무장된 것으로 떠올려 주십니다. 그러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면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지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니, 성령의 인도를 끝까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과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도 결국은 믿음의 분량 만큼만 가능한 것이지요.
믿음의 4단계와 5단계는 어떻게 성령의 교통을 이룰까요?
믿음의 4단계, 5단계는 성령과 더불어, 함께 있는 차원이므로 늘 성령의 교통을 이룹니다. 그런데 4단계와 5단계의 차이는 성령의 교통은 항상 이루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을 때, 그 안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얼마나 정확하고 깊이 있게 깨닫느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 10-12절에 보면,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했지요.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이전에도 천하에 흉년들 것을 정확하게 예언했을 만큼 성령과 밝히 교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사도 바울에 대해 정확하게 예언했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더 밝히 성령의 교통을 이뤘기에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깨우치고 있었지요.
사도행전 21장 13절에 고백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대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주님을 전하다 잡히게 되지만 이로 인해 복음 전파가 더 멀리 많은 사람과 권세자들에게 전해지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주관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교통을 이뤄 하나님의 뜻을 안다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 시간에 걸쳐 성령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돕는 영으로서 역사하시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교통함,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우리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교통하고 싶으신데 그리 못하고 있으면 참으로 답답하시지요.
믿음이 있다면 쉽게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과 교통할 수 있는데, 사람을 의지하려 하고, 성령님을 무시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데도 ‘이거 내 생각 아니야?’ 한다든가 아니면 자기 생각이었는데 성령의 역사라고 오해하고 착각하여 다른 사람을 인도해 가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명심하셔서 내 안에 성령과 밝히 교통하심으로 형통한 삶을 살아가시고 응답과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5-06-12 오후 4:42:56 Posted
2025-06-20 오후 2:31:50 Updated